잡상들

PM이 본 영화 '페르시아어 수업'

KevinKim. 2024. 10. 5. 22:25

이제 새로운 회사에 입사하고 한달이 지났다. 그동안 바빠서 못보던 넷플릭스를 오랜만에 봤다. 흥미로운 작품들이 많이 올라와있는데, 이 중 '페르시아어 수업'이라는 영화에 눈길이 갔다. 세계 2차 대전 속 유대인의 비극을 다룬 작품이라는 소개를 보고, 그나마 최근에 보았던 '존 오브 인터레스트'와 비슷한 분위기나 느낌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페르시아어 수업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정말 몰입해서 봤다. 영화는 유대인 '질'이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유대인이 아닌 페르시아인 '레자 준'이라고 속인다. 때마침 질이 끌려간 수용소의 친위대 대위 '코흐'가 페르시아어를 배우기 위해 페르시아인을 찾고 있던터라 질은 페르시아어를 가르쳐주는 대신 채석장에서의 혹독한 육체노동 대신 상대적으로 편한 주방, 배급일을 하면서 저녁에는 코흐에게 페르시아어를 가르친다. 

 

 

문제는 질은 페르시아어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코흐가 '이 단어는 페르시아어로 뭐야'라고 물을 때마다 엄청난 창작의 고통을 겪는다. 우리가 게임 캐릭터 하나 만들 때 겪는 창작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세상의 모든 단어를 새롭게 탄생시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런 고통을 겪던 질은 때마침 아이디어를 얻는다. 바로 수용소 유대인들의 이름에서 단어를 착안하는 것이다. 질은 사람들에게 배식을 해주면서 이름을 물어봤는데, 그때마다 들은 성, 이름을 활용해서 새로운 페르시아어를 계속 만들어간다. 결국 질은 독일이 패전할 때까지 2,840개 정도의 단어를 만들게 된다. (영화의 결말은 생략한다.)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스토리와 표현에 대한 것이다. '세계 2차 대전의 비극'이라는 주제는 정말 다양한 영화에서 다뤄졌다. 아무리 중요한 주제라도, 이를 미디어에서 표현하는 과정에서 계속 반복되면 피로해질 수 밖에 없다. 가끔 한국영화 중 좋은 주제를 다루더라도 '신파적이다'라는 이야기를 듣는 작품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일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봤던 세계 2차 대전과 관련된 영화는 하나의 주제를 다루지만 어느 하나 익숙한 것이 없었다. 더 리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과 같은 영화가 대표적이다. 표현하는 방식,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에 변형을 주면서 관객이 몰입하게 만들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만든다. 물론 내가 선별해서 봤던 영화들은 이미 좋은 평을 받은 것만 받은 것들이라 그럴 수 있다. 그렇더라도 같은 주제라도 다른 경험, 새로운 몰입감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또 다시 깨닫게 됐다.

 

더 리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이직 후, 이따금씩 커머스PM 커리어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커머스는 다 동일한 것 아닐까, 그리고 커머스에서 정말 좋은 프로덕트가 중요한 것인가 등 생각도 스쳐지나간다. 아무래도 이커머스는 좋은 상품을 좋은 가격에 주고, 배송 서비스가 잘 갖춰지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지털 프로덕트를 통해 제공하는 경험은 다 유사할 것 같다는 나름대로 오만한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겸손한 마음과 모든 가능성을 열고 바라보자. 같은 커머스라도 분명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고객 경험은 달라질 수 있다는 다짐을 하면서 글을 마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