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을 회고한다. 최근에 퇴사를 마무리짓고, 지난주 목요일부터 대구의 외할머니 댁을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올라와서 저녁에 친구의 청첩장 모임을 다녀오는 등 9월의 첫날을 꽤나 정신없이 보냈다. 평소같으면 7월 회고도 작성을 했어야했지만, 퇴사에 대한 고민부터 여러가지 인수인계 작업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론 핑계도 있지만)
1. 3번째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잘 다니고 있던 카*24를 퇴사했다. 플랫폼분석팀으로 1년 8개월을 일하고, 커머스기획팀으로 8개월을 일하던 중 퇴사를 하게 되었다. 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우연히 이직제안을 받은 것이 시발점이 되었다. 평소에 리쿠르팅 제안이 오더라도,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왜냐하면 헤드헌터가 제안하는 공고를 보면 나와 회사를 생각한 제안이라는 느낌보다, '아니면 말고' 식의 제안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해당 회사의 인사팀을 통해서 리쿠르팅 제안을 받게 되었고, 평소 내부에서도 좋은 회사라고 이야기했던터라 한번 면접을 보기로 했다. 여기에 단순하게 시장에서 내 가치를 평가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1차 면접, 인적성검사, 2차 면접 그리고 레퍼런스체크까지 모두 마무리를 한 이후에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면접을 보는동안 단골 질문인 '지금 회사에 지원하는 이유', '지금 회사를 퇴사하는 이유'에 대해서 여러번 이야기를 했음에도 내 마음은 꽤나 쉽게 고민을 내리지 못했다.
떠나는 것을 고민했던 이유는 사실 여러가지가 있었다.
- 2/4주 금요일마다 주어지는 오프데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 오프데이가 있기에 조금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테니스장을 대관하거나 게임에 참여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래도 쉬는 금요일이 있다보니, 이럴 때마다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또는 금요일을 끼고 대구의 외할머니댁을 자주 방문하는 것도 가능했다.
- 익숙해진 프로세스와 사람들의 존재도 있었다. 이곳은 이전에 다녔던 직장과 비교할 때, 정말 우수한 개발/제작 문화를 갖고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 개발, 제작문화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높은 신뢰도'가 이 회사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Jira를 통해서 이슈를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Due Date나 Status, Assign 등을 잘 활용해서 업무 소통이 병목없이 진행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개발, 기획, 디자인, 퍼블리싱까지 모든 사람들이 좋았다.)
- 이직을 자주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한 구석에 있었다. 첫 직장을 1년, 그 다음 직장을 1년 5개월을 다녔다. 너무 자주 이직하는 모양새가 좋지 않을 것 같아서 가급적이면 5년 이상은 다니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반면 떠나고 싶었던 이유도 나름대로 명확했다.
- 스스로 문제를 정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싶었다. 지금의 회사는 B2B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그런데 업력이 오래되었기 때문에 대형 고객사들이 정말 많다. 거의 모든 일들이 이들의 니즈를 중심으로 반영되었다. 그러다보니 스스로 해야할 일을 고민할 기회보다, 해야될 일들이 Top-down으로 하달되는 것이 많았다. PM으로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폭이 제한적이라는 점에 걱정이 있었다. 이전 스타트업에서는 아이템과 관련해서 왜 해야하는지를 대표님 및 전사직원들과 충분한 논의를 통해 일을 벌리고, 이에 대한 피드백이 이루어지고는 했다. 이 과정에서 나름대로 PM으로 성장을 했다고 느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 기획이 어떤 이유로 까이거나, 런칭 후 실패하더라도 내가 나름대로 해야할 과제와 우선순위를 만들어가면서 일해나가고 싶었다.
- 사실 위 이유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크게 크리티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나친 자동화 기조처럼 조금 불만족스러운 상황이 있었을지라도, 그런 일들은 조직 구성원으로 해야할 일이며, 어딜가도 그런 일들은 생길 수 있다보니 크게 문제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고민하느라 합격 후 2주간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조금 더 고민을 하기에는 어떤 경로인지 회사에 내가 다른 회사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알게된 이들이 있었고, 너무 오래끌면 타인을 통해 팀장님께 전달될 것 같아서 2주간 고민하다가 템플스테이를 떠나기 전, 면담을 잡고 퇴사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팀장님은 윗선과 상의하시더니 적절한 카운터 오퍼를 제시해준다고 말씀하셨다. 금전적인 것보다 이렇게까지 생각해주신다는 점에 감사하면서, 최종적인 고민을 안고 템플스테이로 떠났다.
템플스테이에서 스님은 마음을 비우라고 했지만, 이 고민을 안고있던 나는 번뇌에 가득찼던 시간이었다. 그래도 고민은 잘 끝낼 수 있었다. 여러가지를 놓고 고려했을 때, 지금 떠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게 인수인계를 진행하고 8월 28일을 끝으로 지금의 회사를 퇴사했다.
2. 4번째 입사를 결정하면서
지금 입사하는 회사에서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이를 결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업계 1위 H&B 회사에서 운영하는 라이프스타일 커머스 플랫폼의 PO였지만, 회사의 메인 서비스가 아닌 새롭게 리뉴얼 해야하는 서비스라는 점(레거시가 많겠지..?)과, 기존과 같은 인프라 플랫폼이 아닌 프리미엄 셀렉샵 형태의 오픈마켓 플랫폼이라는 점부터 동일한 커머스지만 이전과 달라지는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나름대로 면접을 결정하기까지 신중하게 고민했다. 더구나 티메프 사태로 오픈마켓에 대한 우려,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 등이 있던 상황이라 약간의 걱정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런 이유들 때문에 흥미가 생기는 부분도 있었다.
- 지금의 회사는 오프라인에서 시작했지만, 이 기반을 온라인으로 성공적으로 연결시켜가고 있는 회사다. 이런 회사의 노하우를 배우면서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 테무, 알리와 같은 저렴한 가격기반의 커머스가 주목받지만, 불경기에도 명품시장이 성장했던 것을 생각하면 프리미엄 셀렉샵은 시장 자체가 죽지 않을 것 같다. 좋은 상품을 입점하고, 이를 고객들에게 알리는 것은 마케팅팀을 믿을 수 밖에 없다. 내 할일은 최소한 그런 콘텐츠를 통해 서비스에 들어온 고객들이 쇼핑을 할 때 최고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 커리어 외적으로는 나도 결혼적령기 나이에 접어들다보니, 그냥 대기업이 가보고 싶었다. 처음 시작을 연봉 2,400만원의 중소기업에서 시작했던터라, 대기업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도 있었다.
이런 이유에서 주문, 결제를 담당하는 PO 면접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면접에서 절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좋은 면을 봐주신 덕분에 합격할 수 있었다. 내일부터 시작이다. 잘해봐야지.
3. 그 밖에..
문화 생활 이야기 -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
8월의 문화생활 중 인상깊었던 것은 국립현대박물관에서 진행하는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이라는 전시였다. 인디언의 문화에 대한 것들, 특히나 인디언이라고 하는 집단은 북미 대륙 내 위치한 곳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문화, 생활 양식이 나타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지역에 따른 각기 다른 생활상을 볼 수 있던 전시가 매우 흥미로웠다.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인디언으로 퉁쳐지지만, 실제로는 정말 다양한 형태로 세분화 된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은 자기가 아는 언어, 지식선에서 무언가를 사고할 수 있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ChatGPT와 같은 인공지능이 등장하더라도, 우리는 지속적으로 언어를 공부하고 지식을 쌓아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GPT에 어떤 질문을 할지, 무엇을 질문해야할지와 같은 사고의 영역은 언어와 지식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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