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작은 목표 중 하나는 '문학을 읽자'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를 배출한 나라, 문화강국 꼬레아에 살면서도 소설책이나 시집을 읽은 적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영화나 드라마를 즐긴 것이 내가 접한 문학생활의 전부였다. 독서의 가장 큰 목적은 '정보 전달'이라는 생각과 삶의 가장 큰 문제는 지금 내 일의 전문성이었기 때문에 비문학류의 독서를 즐겨했다.
그러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고민의 폭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사람과의 관계 또는 나는 어떻게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을까 같은 여전히 세속적인 고민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인가처럼 나와 관련한 고민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답을 찾기 위해 지금의 input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문학 작품을 읽기로 했다.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을 선택한 것은 '문학을 읽겠다는 결심'의 상징이었다. 작년 여름쯤 여자친구와 서점에 갔다가 충동적으로 '나도 문학책을 읽어보겠어'라고 구매한 책이 이방인이었다. 책을 집은 이유는 책이 두껍지 않고, 베스트셀러에 있었으며, 표지의 작가 사진이 멋있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어쨌든 그래서 1월이 절반이 지난 지금,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집어 들었다. (책의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고 쓰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받아들인 선에서 글을 끄적여본다.)
이방인은 주인공 뫼르소는 말 그대로 '현자타임'으로 살아간다. 남들의 시선이나 이런 것들이 다 무의미하다고 느끼며, 냉담한 태도로 삶을 대한다. 예를 들면,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눈물 흘리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냐고 묻는 애인에게 그런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강한'현자 타임'을 갖고 살아간다.
조금 뒤에 마리는 나에게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아닌 것 같다고 나는 대답했다.
마리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런 뫼르소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햇빛의 강렬함과 뜨거운 열기 때문에 불쾌감을 느껴서 아랍인을 향해 총을 쏜다. 심지어 이런 상황에서도 특별히 자신의 행동에 반성을 느끼지도 않는다. 재판에 가서도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도 않고, 어떤 변명도 하지 않으면서 결국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리고 이때 사형선고를 앞두고 평온함을 느낀다. 뫼르소는 조금 극단적인 모습인 것은 맞다. 하지만 우리가 상식이라고 부르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들에서 오는 부조리함에 지배당하지 않았다.
요즘 들어 직장생활에서 많은 현타를 느꼈던 것은 사실이다.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는 작은 기업에서 '언젠가 대기업은 한번 찍는다'는 목표로 열심히 커리어를 만들어왔고, 막상 대기업에 입사한 후에는 '글로벌로 나가서 일한다'는 꿈을 다시 만들고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세상의 다정한 무관심을 이해했고,
그것에 나 자신을 적응시켰다
하지만 그렇게 들어온 대기업은 '환상'이었다는 것을 요즘에 느꼈다. 돈이나 복지보다 잦은 회식이나 수직적인 구조에서 오는 밸런스 파괴에서 기존의 환상이 깨졌던 것이다. 그러자 이후에 가졌던 목표나 꿈에 대해서, 이 또한 부질없는 것이 아닐까 같은 생각이 이따금씩 들면서 삶이 무기력했던 때도 있었다.
그런 고민 속에서 나는 내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추구했던 목표는 사회가 만들어낸 성공의 기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책 한 권 읽었다고, 내가 31년간 유지해 온 태도나 가치관이 순식간에 바뀌진 않는다. 나는 오늘도 내일도 영어 공부에 시간을 쏟으며, 사회가 만든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살 것이다. 그러다 언젠가 나의 목표가 헛되고, 꿈이 무의미하다고 받아들이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 이후엔 또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뫼르소의 무관심을 통해 '부조리를 수용한 것'이 인생을 체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신에게는 가장 정직한 태도였고, 그 결과 스스로에게 부여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당장 내일 출근해서도 여전히 나는 삶의 부조리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방인을 통해 ‘부조리를 수용한다는 것은 삶을 단념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살아내는 태도’라는 생각으로 내일 하루도 버텨보려고 한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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